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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설악 백담사 0
 작성자: 박사리  2003-06-04 19:07
조회 : 5,411  


백담사는 서기 647년(신라 선덕왕 1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한계사라 이름하고 미타상(彌陀像) 삼위(三位)를 봉안하였다. 서기 690년(신문왕 10년)에 화재로 소실되고 그로부터 30년 후인 서기 719년(성덕왕 18년)에 중건되었으나 70년 후 서기 785(원성왕 원년)에 또 다시 화재를 입어 소실되었다.

그로부터 또 5년 후 이 절의 승려인 종연, 광학, 각경, 영조,법찰, 설흡 등이 이곳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새로절을 세우고 운흥사(雲興寺)라 하였다. 그 운흥사도 서기 987년(성종 3년)에 8인의 변을 당하여 폐허가 되고 3년 후 승려 동훈, 준희 등이 옛터에서 북으로 60리 지점에 옮겨 새로 절을 짓고 심원사(深源寺)라 개명하였다.

하지만 그 심원사도 1431년(세종 14년)에 다시 화재를 입어 2년 후 해섭, 취웅 등이 그곳에서 아래로 30리 지점에 중건하여 선구사라 하였다가 나가 영취사(靈鷲寺)를 세웠다. 서기 1456년(세조 원년)에 그것마저 불에 타 없어지고 이듬해 승려 재익, 재화, 진영 등이 옛터의 상류 20리 지점에 다시 중건 하고 백담사라 시명하였다.

백담사의 명칭을 얻은 후에도 변천이 심하여 서기 1772년(영조 48년)에 소실되어 3년 후 최봉, 태현 등이 다시 짓고 심원사(尋源寺)라 개칭하였다가 서기 1783년(정조 7년)에 이르러 또다시 백담사(百潭寺) 라 고쳐 불렀다.

그랬던 것이 서기 1915년(을묘년)에 백담사의 160여 칸이 한회(寒灰)로 변하고 지금 있는 터에 4년 후 오세암에 거하는 인공노선(印空老禪)이 사찰을 중건하였으나 6.25동란 때 전부 소실되어 1967년 그 터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이와 같이 신라 때 창건한 백담사는 오랜 세월 갖은 풍상을 겪으며 그 변천과정이 복잡할 뿐 아니라 많은 수난과 재화가 잇따라 백담사의 명맥을 이어온 역사는 실로 기구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동안 사찰은 많은 풍상을 겪었으나 유구한 역사 속에 지금은 백담천에 웅장한 석교(修心橋)가 놓여 있고 사찰도 크게 증축되어 옛 고색 창연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나 많은 관광객이 찾는 유적지로 이름난 사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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