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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스님이 묘엄스님에게 준 ‘명심’ 비구니 승가교육 뿌리...도연스님(47 0
 작성자: 석림동문회  2026-10-19 19:49
조회 : 1  

경상국립대청담사상연구소 제19회 학술세미나
봉녕사 학장 도연스님, ‘명심’·'공동서원문' 조명

봉녕사승가대학장 도연스님이 발표를 하고 있다ㅏ.
봉녕사승가대학장 도연스님이 발표를 하고 있다ㅏ.

“인천(人天)의 도사(導師)임을 명심하고 모든 일에 솔선하여 남의 모범이 될 것.” ‘명심불망(銘心不忘)’이라 적힌 봉투에 담긴 아홉 조항 가운데 하나다. 청담스님이 1945년 출가한 딸 묘엄스님에게 써 준 ‘명심(銘心)’과 1964년 성철스님과 함께 세운 도선사 공동서원문에 담긴 혁신사상이 비구니 승가교육으로 이어져 확장됐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봉녕사승가대학장 도연스님의 <‘명심’과 도선사 공동서원문에 나타난 청담스님의 혁신사상과 그 계승·확장-묘엄스님의 비구니 승가교육을 중심으로>란 제목의 논문이 그것이다. 도연스님은 경상국립대 청담사상연구소(소장 김봉규)가 10월15일 칠암캠퍼스에서 개최한 ‘진주권역 선각자들의 혁신 정신과 명상적 성찰’이란 주제의 제19회 청담사상 학술세미나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2011년 묘엄스님 입적 후 유품 상자에서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발견된 ‘명심’에는 청담스님의 아홉 가지 당부가 들어 있었다. “증애심을 버려서 파당에 참여하지 말 것”, “자력으로 살고 남에게 의뢰하지 말 것” 등 날마다 실천할 행동 기준이다. 청담스님의 당부는 “자기를 단속하여 인천의 사표되고 생사에 자재하여 중생을 제도하라”는 묘엄스님의 유훈으로 이어졌다. 도연스님은 “청담스님에게 받은 기준이 묘엄스님의 교육에서는 학인을 기르는 목표가 되었고, 입적의 자리에서는 후학에게 남기는 마지막 당부가 된 것”이라고 밝혔다.

수원 봉녕사승가대학장 도연스님.
수원 봉녕사승가대학장 도연스님.
왼쪽부터 축사를 하는 안미정 경상국립대 부총장, 인사말을 하는 김봉규 청담사상연구소장, 경과보로를 하는 허익구 명예소장.
왼쪽부터 축사를 하는 안미정 경상국립대 부총장, 인사말을 하는 김봉규 청담사상연구소장, 경과보로를 하는 허익구 명예소장.

도연스님은 그동안 주로 ‘정화’를 중심으로 연구되어 온 청담스님을 한국 비구니 승가교육사 속에서 다시 조명했다. 혈연이자 법연으로 맺어진 청담스님과 묘엄스님의 사자상승을 문헌과 제도로 짚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도연스님은 “혁신은 전통을 부정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불조의 가르침과 청규의 정신을 당대 승가의 삶 속에서 회복하고 실현하려는 사상적·실천적 지향”이라고 규정했다. 청담스님의 혁신은 승려의 자격을 가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을 기르는 교육으로 이어졌으며, 어린 비구니 제자까지 인천의 도사가 될 사람으로 세운 데 있었다는 설명이다.

도연스님은 1964년 9월13일 작성된 공동서원문에서 두 스님의 필체가 번갈아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목적문과 맹서, 제3조는 청담스님이, 기원문과 제1·2조는 성철스님이 썼다. 이틀 뒤 두 스님이 ‘실달학원 시행요강’을 마련한 사실도 밝혔다. 도연스님은 “서원과 학인 교육의 규범이 같은 곳에서 잇달아 나왔다는 점에서, 공동서원문은 도선사에서 수행자를 길러 내려던 구상과 함께 세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청담스님은 ‘나의 고백’에서 승단정화 다음 단계로 ‘비구승단 자체정화’, 곧 승려 교육을 꼽은 바 있다. 1964년 승니특별강습회 격려사의 “인천의 도사가 되기를 맹서해야 하겠다”는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명심’ 제6조가 종단의 교육 목표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도연스님은 “청담스님에게 정화의 대상은 승단을 이루는 사람이었고, 그 기준은 계율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진주 의곡사 주지 정산스님과 고성 옥천사 주지스님도 참석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진주 의곡사 주지 정산스님과 고성 옥천사 주지스님도 참석했다.
세미나를 마친 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세미나를 마친 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공직과 회의에 나서지 않겠다는 서원과 종정까지 지낸 실제 행적 사이의 간격에 대해서는 묘엄스님의 회고를 전했다. “성철스님은 ‘참 중은 그래야 마땅하다’는 정신적인 것을 심어주셨고, 청담스님은 직접 활동을 하시면서 몸소 실천을 해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도연스님은 이 서원을 “제도 안에서 활동할 때에도 수행과 청정승가의 기준을 잃지 않으려는 긴장 속의 기준”으로 읽었다.

청담스님의 뜻은 묘엄스님에게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묘엄스님은 1974년 봉녕사 강원을 열고 ‘발심·구도·보은’을 원훈으로 삼았으며, 1992년 첫 전강 이후 11명의 비구니 강사에게 강맥을 전했다. 1998년 해인사에서 비구 율사가 비구니계를 강의하겠다고 하자 율장의 원칙을 들어 반박했다. 도연스님은 이를 두고 “난경을 당할 때 용감하게 나서고 꼭 해야 할 말이면 분명하고 기운차게 하라는 ‘명심’의 가르침과 상응하는 실천”이라고 해석했다. 묘엄스님은 이듬해 한국불교 최초의 비구니 율원인 금강율원을 열었다. 2007년에는 조계종 첫 비구니 율주로 비구니가 비구니에게 계를 전하는 전계를 시작했고, 2009년 상설 금강계단을 세웠다. 이 흐름은 2023년 비구니 십사(十師)에 의한 식차마나니계 수계로 이어졌다.

도연스님은 “청담스님은 승단을 새롭게 하는 길을 사람을 기르는 데서 찾았고, 비구니 제자도 인천의 도사가 될 사람으로 세웠다”고 했다. 이어 “묘엄스님은 이를 이어받되 비구니가 비구 스승에게 배우는 자리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가르치고 계를 전하는 주체가 되게 하였다”고 강조했다.

도연스님은 청담스님뿐 아니라 성철·운허·경봉·자운스님의 가르침도 묘엄스님에게 바탕이 됐다고 밝혔다. 성철스님은 어린 묘엄스님에게 “비구니계에 혁명을 일으키는 큰스님이 되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마음에 새겨 잊지 말라’는 ‘명심불망’ 네 글자는 66년 동안 봉투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열네 살 사미니가 아버지이자 스승에게 받은 당부는 봉녕사의 강원과 율원, 계단으로 계승돼, 비구니가 비구니를 가르치고 계를 전하는 구조로 이어졌다. 도연스님은 발표를 마치며 “마음에 새겨 잊지 말라는 당부는 지금 봉녕사의 사미니 학인 스님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연스님의 논문에 대한 토론은 손병욱 경상국립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이밖에도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사가 ‘일제강점기 불교 선각자들의 세 갈래 길’을, 이상봉 전 LG전자 사장이 ‘구인회의 기업가 정신이 현대 대전환기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했다. 토론은 각각 이성수 동국대 겸임교수(불교신문 기자)와 윤정배 경상국립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이날 세미나에는  수행과 교육, 민족운동과 기업 경영이라는 서로 다른 길에서 시대를 앞서간 진주권역 선각자들의 혁신 정신을 한자리에서 조명했다. 정신이 한 시대의 업적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의 사람을 기르는 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발표 논문과 기고논문 3편은 청담사상연구소 논문집 <마음사상>에 실릴 예정이다.


( 불교신문 2026.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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