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 것 같더니 이미 초여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J스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지난 부처님오신날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려서 많은 절에서 애를 많이 쓰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떠하셨는지요? 우리절에서는 부처님오신날 저녁, 예불 후 점등식과 더불어 작은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비가 오는 가운데 국사전 앞에는 몇 개의 텐트가 펼쳐지고, 은은한 조명가운데 음악인 4~5명은 저마다 가진 재능을 희사하여 부처님과 여러 불자들에게 음성공양을 올렸습니다. 강한 빗줄기는 절마당에 내를 이룬 듯 했고 빗방울 사이로 보석이 빛나듯, 음성공양은 두어 시간 남짓 계속되었습니다.

J스님, 우리나라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빛처럼 펼쳐진 세월, 북방전파설에 따르면 1700년, 남방전파설에 따르면 190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속에 품은 포용의 자비정신으로 독특한 종교 혹은 문화로 자리매김되어 왔습니다. 하여 각 절에는 산신각, 탱화단청, 범패 등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불교의 문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과 정신 깃들어 있어

스스로 주체의식 갖추는 것이

서양 의존적 일부 인사들에게

진가를 알려주는 길이 될 것…

J스님,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2008년도 우리 절에서 출토된 신라시대의 금동유물의 소유권 여부문제 때문에 십수 번의 서울 나들이가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2008년에 신설된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제40조 2항의 문화재위원 심의 때문이었습니다.

사찰 경내에서 발견된 매장문화재도 문화재위원 심의.판단에 따른 법조항이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옛 문헌을 뒤져 우리절이 신라시대부터 법통이 끊이지 않고 왔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또 문화재위원 앞에서 법정에서 피고가 추궁 받듯 서릿발 같은 심문(?)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전 출토된 유물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다행히도 유물들은 우리절 소유로 확정되었습니다. 2000년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사찰을 두고 판단하는 기준은 행정편의적 발상뿐인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J스님, 불교문화는 우리나라 문화의 한 영역을 구축했고 불교문화 속에서 유형무형의 많은 문화재가 생겼습니다. 불교문화는 우리나라의 고유의 문화로서 금강석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건봉사 등에서는 선배 스님들께서 신문화와 불교전통문화를 조화시켜 부처님오신날에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연극으로 꾸며 교화의 방편으로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J스님, 긴 세월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 정신문화 속에서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부분을 가져왔습니다. 그 부분이 전각이든 불상이든 기타 공양구든 할 것 없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깃든 우리만의 것입니다.

오늘날 각 사찰에서는 산사음악회 등 여러 형태의 문화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그 속에 부처님의 가르침 내지 우리 문화의 고유성이 투영되는 주제있는 행사가 되어야 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불교문화에 대한 주체의식을 갖추는 것이 서양 의존적 문화의식을 가진 일부 인사들에게 당당한 불교문화의 진가를 알려주는 길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이 명제를 갖고 새로운 불교문화 창달을 위해 정진하겠습니다.

J스님! 늘 청안하십시오.

[불교신문 2722호/ 5월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