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無偶(무우)
종림스님 지음/솔
‘팔만대장경 전산화’라는 대작불사를 마친 종림스님이 새 책을 선보였다. 스님은 책에서 “나는 나를 신의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다”는 다소 도발적인 고백으로 시작한다. 스님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마음에 펼친 책은 이 한 줄 글로 마음에 의문점을 찍는다. 스님의 고백은 고뇌로 이어진다. “움직임에는 두 가지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들이다. 하고 싶은 것은 욕망, 충동에 근거하고 자기 중심적이다. 만족과 불만족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해야 하는 것들은 당위, 상징적인 어떤 것들이고, 행위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옳음과 그름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두 힘 간의 긴장 관계가 인간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벗어나려면 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그것이 공(空)일까?” 결론은 이미 서문에 들어있다. “0에서 시작해라!”
이 책은 한 수행자가 평생에 걸쳐 마주한 존재론적 고뇌의 기록이자 그 해답을 찾아 나선 치열한 사유의 여정이다. 세상과의 불화, 그리고 ‘하고 싶은 것(욕망)’과 ‘해야 할 것(당위)’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에서 오는 고통의 근원을 파고든다. 그 길 위에서 그는 ‘공(空)’ 사상을 만나지만, 기존의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유(有)와 무(無)’라는 이분법을 넘어 ‘0과 1’이라는 새로운 사유의 틀을 제시한다. <無偶(무우)>는 ‘0에서 시작’하는 사유를 통해, 고정된 실체가 아닌 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변화하는 존재의 새로운 지도를 그린다.
스님은 신적인 초월이나 관념의 유희에 기대지 않고, 이 땅에 발 딛고 선 수행자로서 과학적 사고와 유신론적 태도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신이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종림스님은 안의(安義) 삼동에서 태어났다. 안의는 덕유산과 지리산 사이에 있고 ‘아나키’의 고향이다. 스님은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말한다.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졸업하고 해인사로 출가를 단행했다. 월간 해인 편집장, 해인사 도서관장 등을 맡았다. 해인사, 상원사 등 제방의 선원을 다니다 대흥사 동국선원에 있었다. 팔만대장경을 전산화하기 위해 고려대장경연구소를 설립해 20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지금은 불교 책 박물관 고반재(考般齋)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3년 조계종 종단 최고의 법계인 대종사가 됐다.
( 불교신문 2025.10.1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