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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원 이사장 법진스님...법진스님 0
 작성자: 석림동문회  2010-08-02 00:24
조회 : 9,688  
 
법진스님은 선학원 제17대 이사장으로 민족불교 한국불교의 산실인 선학원의 발전을 고민하고 있다.
 
 
 
선학원(禪學院)은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을 낳은 산실(産室)이다. 청정비구 중심의 한국정통불교가 일제의 동화정책을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진 데는 선학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 때 용성, 만공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은 일제의 사찰령에 맞서 청정비구 중심의 선학원을 만들어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유지했다. 많은 우여곡절과 어려움을 이겨낸 선학원의 비구승들은 해방 후에는 왜색불교 청산과 부처님 법 유지계승을 내걸고 정화운동을 펼쳐 결국 오늘날의 조계종을 탄생시켰다.
 
 
 
“물질적 행복 추구는 소금물로 갈증 없애는 것”
 
 
불자란 부처님 가르침 따라 새롭게 태어난 자
 
한국불교 중흥하려면 불자들 제대로 공부해야
 
불교는 거대한 탑과 같은데 오르는 계단 없어
 
법회 개설이나 문서포교는 불법에 이르는 방편
 
 
선학원은 법인이다. 주로 조계종 스님들이 운영하는 도심의 사찰이 선학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재단의 최고 책임을 맡는 이사장의 면면은 한국불교 고승열전 그 자체다. 제1대 만공스님을 시작으로 적음스님, 경봉스님, 청담스님, 향곡스님, 석주스님 등 최고의 선승들이 선학원을 책임졌다. 그 맥을 이어 법진스님이 제17대 이사장을 맡아 선학원을 이끌고 있다.
 
지난 16일 선학원 이사장 법진스님을 만났다. 스님이 주석하는 정법사는 서울 성북동 길상사 위에 있다. 조선 후기에 창건한 왕실 수호사찰 복천암으로 출발한 정법사는 만일염불회를 이끌었던 보광스님과 석산스님이 만일염불회의 근본도량인 강원도 고성 건봉사의 서울 포교당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른다. 법진스님의 은사인 석산스님은 백수(白壽)를 바라보지만 아직 정정하다. 스님은 “건강하신 은사 스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법진스님은 선학원의 현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민족불교 정화불교의 산실인 선학원은 정화를 통해 통합종단을 탄생시키고 새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정화는 일회성 개념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상시적이어야 한다. 종단은 종단대로, 재단은 재단대로 늘 스스로 잘못을 고쳐나가며 새로운 과제를 수행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1962년 4월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하면서 선학원이 지켜오던 부처님 고유의 법에 의지한 청정비구승단의 맥은 새 통합종단으로 이어졌다. 선학원은 새로운 모색에 들어갔다. 선학원이 이루고자했던 꿈은 고스란히 조계종단과 소속 사찰로 옮겨간다. 선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고승들도 정화 후 지방의 사찰로 내려가 가람을 수호하고 선풍을 일으키는데 매진한다. 민족적 사명, 불교 전통의 수호라는 무겁고 어려운 짐을 내려놓은 선학원에는 다양한 생각과 모습의 불교가 새로 찾아들었다. 그 과정에서 선학원의 정체성이 흐려졌다. 방향이 뚜렷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994년부터 몇 년간 선학원의 정체성과 방향정립을 둘러싸고 종단과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종단은 조계종의 산파역을 했던 선학원이 원래 정체성을 상실했다며 조계종단 소속임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한다. 종단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선학원은 통합종단 출범 후 방향을 상실했다. 선학원은 더 이상 민족불교 정통불교의 가치가 아닌 단지 여러 사찰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야했다. 선학원에 적을 둔 사찰은 대부분 조계종 스님들이었다. 하지만 선학원을 그렇게 만든 것은 조계종단이었다. 통합종단 출범 후 거의 30여년을 분쟁으로 지샌 종단이었다. 그 와중에 상처입고, 힘없는 스님들이 피난처로 삼은 곳이 선학원이었다. 종단과 선학원이 심각하게 갈등할 때, 그리고 극적으로 타협해 화합할 때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바로 법진스님이다.
 
이제 종단과 갈등도 오래전에 매듭짓고 선학원은 조계종단의 일원으로 다시 새 출발을 모색하고 있다. 상무이사에서 이사장으로 책임감이 더 커진 법진스님의 어깨에 종단과 함께 하면서 선학원만의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짐이 올려진 것이다.
 
스님은 이사장에 취임한 후 선학원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 몇 가지 불사를 했다. 만공스님이 초대이사장을 맡았던 1934년의 조선불교선리참구원을 이어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을 설립했으며, 만해스님의 <선원>지를 복간하고 인터넷 포교를 위해 <불교저널>을 창간했다. 현재는 복지법인 설립을 준비 중이다. 스님은 “선학원에 비구니 스님들이 많다. 대형사찰보다 도심형 사찰이 많은데다 대중 수가 많지 않다. 또 출가자가 급감해 대중 속에서 수행하며 함께 노후를 보내기가 쉽지 않다. 이에 재단에서는 스님들이 노후를 걱정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님이 처음부터 선학원을 책임지겠다는 원력을 세운 것은 아니다. 종비생에 선발될 정도로 머리 좋고 개혁성이 강했던 스님은 한 때 종단의 변화와 한국불교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서운스님이 총무원장 하던 시절 총무원의 사회국장을 맡았으며 1983년 비상종단 시절에는 상임위원을 맡아 젊은 도반들과 함께 종단 개혁에 나섰다. 개혁성향이 강한 소장파 스님으로 종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법진스님은 당신의 의도와 달리 노스님을 모시게 되면서 선학원을 책임지게 된다. 하지만 스님의 화두는 늘 한국불교 전체의 발전이다. 스님이 생각하는 발전은 그러나 제도개혁이나 형식의 변화가 아니다.
 
“한국불교가 희망을 가지려면 불자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야한다. 불자의 정의가 무엇이냐. 종불구생(從佛口生)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새롭게 태어난 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 익혀야 한국불교의 미래가 있다. 그리고 늘 수행해야한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수행의 종교다. 수행의 방법은 다양하다. 한국불교는 선종을 표방하지만 참선 경전 염불 삼문(三門)을 모두 받아들인다. 어느 문이든 깨달음의 문에 들어갈 수 있다. 참선자들도 선밀쌍수(禪密雙修)라고 해서 진언도 외우고 나무아미타불도 외운다. 그러므로 자기 근기에 맞는 방법을 택해 수행할 때 한국불교의 미래가 밝아진다.”
 
수행을 하는 이유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다. 종단도 재단도 결국 인간 개개인의 행복과 밝은 내일을 위해 복무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물질의 충족에서 자기를 들여다보는 생활로 바뀌어야한다. “행복하게 살려면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려야한다. 불교의 기본은 업과 윤회다. 업 사상이란 자기 행위에 대해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다. 그림자가 자기 몸을 따르듯 말과 행동은 모두 자기 책임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착하게 살아야한다. 우리 시대는 경제시대다. 자본주의 자체가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 한다. 물질로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나. <자타카>에 이르기를 금은보화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도 인간의 욕심은 채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물질로 욕망을 충족하는 것은 소금물로 갈증을 채우는 것과 같아 더 갈증을 불러일으킨다. 부처님께서는 외부 경계로는 욕망을 충족할 수 없으며 스스로 지족(知足)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시대 일수록, 물질이 풍부할수록 지족해야한다. <아함경>에 스스로 지족할 줄 알면서 고요히 명상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고요한 가운데 명상수행하고 적정락을 갖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임을 알아야한다. 불자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수행하고 경전을 읽으며 삼매에 들도록 공부해야 할 것이다.”
 
스님은 불자들에게 행복으로 가는 길을 전하기 위해 일요법회를 개설하고 문서를 만드는 등 많은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한국불교는 그 자체가 거대한 탑과 같다. 그런데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없다. 내가 몸담고 있는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하는데 이를 전달할 있는 매개체가 부족하거나 현실과 맞지 않다. 그래서 이를 전달하기 위해 일요법회를 개설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해 문서를 만들었다.”
 
스님은 관심은 불교의 테두리를 넘어 사회로도 향한다. 특히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4대강 등 환경문제에 고민이 많다. 스님 역시 개발의 피해자이다. 대통령의 친한 친구로 알려진 천신일 씨가 박물관을 짓는다며 정법사 인근을 공사장으로 만들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기를 꿀벌이 꿀을 채취하듯 하라고 했다. 꿀벌은 꽃을 훼손하지 않고 체액만을 채취한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연을 이용하되 자연을 해쳐서는 안된다. 후손에게 물려줄 하나 밖에 없는 지구를 잘 가꾸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의무다. 4대강은 내가 못하면 다음 정권이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두루 소통하며 충분하게 검토해서 하면 된다. 내 임기 중에 급하게 마무리 하려다 보니 훼손을 하게되는 것이다”며 “법(法)이 무엇인가. 물(水)이 자연스럽게 흐르는(去) 것이다”라는 말로 자연의 이치를 설명했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법진스님은…
 
부산에서 태어난 스님은 1970년 범어사에서 석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범어사 강원을 마치고 동국대 종비생으로 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조계종 사회국장을 역임하고 선학원 상무이사 등을 지냈다. 성북경찰서 경승위원, 월곡청소년센터 관장 등을 지냈다. 현재 제17대 선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원광대에서 ‘조선중기 선사상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원시불교의 경제윤리에 대한 연구’ ‘경허의 선정관에 대한 연구’ 등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불교신문 2644호/ 7월31일자]
2010-07-28 오전 11:12:12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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