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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상 스님의 열한번째 전시 ‘화엄의 꽃’...희상스님(29기) 0
 작성자: 석림동문회  2010-05-07 14:54
조회 : 10,534  
꽃비 내리는 날
당신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나요?


희상 스님의 열한번째 전시 ‘화엄의 꽃’
4월 27일까지 인사동 목인갤러리서 열려

애꿎은 봄비로 갓 피어난 꽃잎들이 후두둑 떨어지던 날, 한 전시회를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 조계사 앞에서 오랜만에 만난 스님들이 ‘좋은데 데려간다’며 반쯤 우격다짐으로 끌고간 전시회. 아직 오픈을 하지 않은 그곳에는 방금 봄비에 쓸려간 꽃잎을 모아놓은 듯, 세상의 모든 꽃들이 그곳을 장엄하기 위해 모인 듯한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희상스님 작. 왜 마음이 마음 자신을 붙잡아야 합니까?, 2010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꽃비 내리는 가운데 합장을 하는 그림도 있고, 간혹 여러 부처님이 연잎 위에서 낮잠을 즐기는 듯한 그림도 있었다. 커다란 연잎 아래서 꽃비를 맞으며 서있는 두 분의 부처님은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지 광배와 광배를 맞대고 있고, 그 위에서는 팔색조가 한가로이 쉬고 있었다.

“불화가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들. 그림은 매우 아름다웠고, 세련된 기품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깊은 감동이 흘렀다. 그것은 깊은 신심을 지닌 이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세계였고, 보는 이로 하여금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세계였다.

이 범상치 않은 그림들을 탄생시킨 희상 스님은, 몇 년 전 고무신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 전시로 화제를 모았던 비구니 화가였다. 스님은 운문사승가대학을 마치고 동국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 브레멘 국립조형예술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마이스터 과정(우리나라의 박사과정)을 졸업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후 스님은 독특한 설치미술을 통해 간간히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곤 했다.

희상 스님 작, 때문에 다시 여기, 2010

전시회에서 만난 스님은 그림에 대한 설명을 거의 해주지 않았다. 가끔 엉뚱한 질문을 하면 그와 반대되는 대답을 해주곤 했는데, 아무래도 그림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함인 듯 했다.

“스님, 이 부처님들은 화엄경의 수많은 제불보살들인가요?”

“아니요, 뭇중생들의 모습이에요.”

“스님, 얼굴을 맞댄 이 두 부처님은 연인을 표현한 것인가요?”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지금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기자님과 저일 수도 있구요.”

“이 꽃비들은 화엄세계를 형상화한 것인가요?”

“아니요…(웃음과 함께 이어지는 침묵).”

이런 식이었다. 전시회의 한 가운데는 흰 쌀 가운데로 의미심장한 혹은 애매모호한 설치물들이 간간히 놓여있는 미술품이 설치돼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일본 사찰에서 간혹 볼 수 있는 가레이스키 정원을 연상시켰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금강경 구절들이 흰 돌가운데 적혀 있다. 금강경에 나오는 “갠즈상의 모래알 수만큼의 칠보로써 보시하는 복덕보다 이 경을 설하는 복덕이 훨씬 뛰어난 것”이라는 구절을 형상화한 것이리라.

희상 스님 작, 如如합니다…, 2009
 

잔잔한 감동을 가슴에 안고 돌아온 날 저녁 스님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스님의 작업노트와 전시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었다.

“작품을 구성하는 동안 금강경의 ‘정말 거룩하십니다...자세히 잘 듣겠습니다.’ 라는 경구가 계속 되뇌여졌습니다. 알 수 없는 환희스러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진리란 무엇이었던가 라는 물음으로 진지하게 다시 돌아온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소박한 일상생활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의 거룩함에 대하여 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표현하는 작업과정을 통해 부드러운 색채와 염불삼매에 집중된 힘이 요구되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절대적인 신앙이 바탕이 되어야 했습니다. 흔들림이 없는 선과 틀에 벗어난 어떤 자유스러움이며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지혜로운 일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표현했다는 스님의 그림 속에서 왜 그토록 많은 꽃잎들이 휘날렸는지, 왜 수많은 불보살이 등장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꽃잎은 순간에 머물고, 중생들은 항상 그 떨어지고 마는 작고 가련한 존재를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그 꽃잎은 우리의 삶과 매우 닮았다. 스님은 바로 그 순간을 안타까움 대신 환희심으로 느끼는 불보살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꽃잎이 흩날리는 날, 허공을 바라보면 꽃으로 장엄한 세계가 보이지만, 아래를 바라보면 이미 싸늘히 식은 꽃의 무덤이 보인다. 우리는 그 감미로운 슬픔을 떨쳐낼 힘이 없다.

스님의 제작 노트에는 이런 내용들도 담겨 있었다.

“덧 없다”는 뜻은 무슨 뜻이예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건 “머지 않아 사라질 위험이 있다”는 뜻이야….
붓다와의 인연이 십 수년 흘렀다. 그렇게 흐르는 사이, 이렇게 “표현되어 버린” 지금이다.
형상이 있는 모든 것들은 이미 사라지고 있고, 붓 끝에 물방울 하나도 순간을 통해 이미 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위험이 있는 것들에 대하여 돌이켜 “이것이 무엇인가?”
.........................
모양 있는 모든 것을 하나로 돌이킨다.

형상이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짐을 알기에 봄보다 더 좋은 계절은 없다. 그 중에서도 벚꽃이 수도 없이 떨어지는 요즘은 무상함의 극치이다. 무상함은 곧 영원으로 통하고, 영원은 순간으로 연결된다. “지금 이 순간.”

희상 스님의 그림들은 4월 27일까지 인사동 목인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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