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스님 / 논설위원ㆍ시인
근대불교를 대표하고 있는 조계종은 종단의 역사와 위상을 바르게 설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조선불교는 세종 이후에 승려들에게 도성 출입금지를 명한 이후 성종 연산군시대를 거치면서 승려들은 도성을 출입할 수 없었고, 도성을 출입하려면 국가로부터 도첩을 받기 위하여 국가에 봉사하는 노역을 하지 않고서는 승려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조선중기 조선불교를 중흥시키려고 노력을 하였던 허응당 보우스님과 환성지안 선사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며 허응당 보우선사와 환성지안 선사는 조선중기 불교를 회복하는 운동을 전개하다가 유생들에게 폭행을 당해 제주도에서 순교했다.
근대사부터 올바로 알자
반면에 조선에서 승려가 도성을 출입할 수 있었던 시기는 고종 시대인데 그 당시에도 조선불교는 발전하지 못했다. 근대불교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조선에서 불교를 위하여 온 몸으로 권력자들에게 저항했던 그 정신을 귀감삼아야 하며, 다시는 그러한 억압이 없도록 철저한 불교 교육을 승가대중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승가의 존재를 성찰하는 것은 그 시대의 역사관을 확립하는 교육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과연 한국불교가 그러한 역사관을 통해 승가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던가를 반성해야 한다.
승가의 전통적인 역사관을 확립하지 못하고, 강원에서 선원에서 대학에서 불교학습을 통해 역사관을 확립하지 못하고 정진을 한다면 무용지물격인 무존재의 불교관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불교역사를 바르게 학습하지 못하고 깊은 산간에서 집단적으로 수행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사회를 보는 관점에서 집단적으로 방관자의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수행자 타령이나 하고 있을 것이며, 불교역사관을 바르게 성찰하지 못하면서 불교사를 안다고 하는 불교사학자 승려들이 있을 수 있다.
조선불교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선각자들 가운데 귀감이 될 수 있는 선사들의 역사관을 후학들이 전승해야 한다. 특히 허응당 보우선사와 환성지안 선사의 조선불교회복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 무불 이동인 개화파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불교를 중흥시키려고 활동을 전개하였고 그러한 성과로 인하여 고종 시대에 와서 금지되었던 도성을 출입할 수 있었다. 도성을 출입할 수 있었던 시기는 1895년 3월29일이지만, 현 조계사가 있는 터에 각황사를 건립한 것은 1910년 5월 부처님오신날을 기해 조선불교포교당을 세웠던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도심지에 사원을 건립하기에 이른다.
종립대학 연구소·학과 필요
조선불교가 그 맥을 다시 이었다고 하는데 있어 참으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역사를 바르게 고찰하기 위해서는 근대불교의 역사를 학습할 수 있는 연구소나 학과가 개설되어야 한다. 근대불교의 바른 역사관을 학립하기 위해서는 불교사학과를 중앙승가대나 동국대에 설립하여 불교사에 대한 바른 역사관을 수립해야 한다. 육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후삼국 고려 조선 근대사의 불교 역사관을 알지 못하고서는 현대의 불교를 탐구할 수 없으며 고대 불교의 역사관을 바르게 성찰함에 있어 국가불교의 전승을 고찰할 수 있다.
[불교신문 2598호/ 2월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