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 ID/PW 찾기  
동문동정
홈 > 동문_동문마당 > 동문동정
     동문동정 입니다.
         
심산스님/내복 한 벌 ...심산스님(19기) 0
 작성자: 석림동문회  2010-01-26 10:29
조회 : 11,146  


심산스님/논설위원ㆍ부산 홍법사 주지

가을이 깊어가기 시작하면 하나씩 들어오는 모자와 목도리가 해를 거듭할수록 쌓이기 시작한다. 나름으로는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같은 회색이라도 짙고 엷든 것이 있으니 색깔은 어떤 것이 좋을까. 스님마다 다른 취향에 모양은 또한 어떻게 떠야할까. 완성된 것을 스님께 보여 드려서 보완이 필요하면 어떻게든 고쳐서 스님이 쓰게 하려고 지극 정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야말로 신도의 입장에서는 최상의 작품을 인연 있는 스님께 공양 올리는 것이다.

받는 것에 익숙해져

새벽에 옷을 입으려는데 벌써 몇 달째 옷장 위에 놓여진 ‘한번이라도 꼭 입어 주세요! 000올림.’ 이라는 메모가 새삼 큰 의미로 눈에 들어왔다. 지난 가을에 받은 내복 속에 있던 것을 무심코 버릴 수 없어 놔둔 것이다. 거기에는 잔잔한 애절함이 묻어 있었다. 주지스님이면 이런 내복이 어디 한두 벌 들어오겠나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받아서 다른 스님이나 어려운 이웃에게 바로 나누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제발 한번만이라도 입어 공덕이 되게 해 달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누구를 준들 공덕이 안 되겠는가 마는 그래도 주지스님이 꼭 입어 달라는 애원에 이번 겨울 추위에 고맙게 입었다.

언제부턴가 내 삶의 모습을 돌아보니 자연스레 신도들에게서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있다. 설과 추석 명절에는 양말 한 켤레에서부터 빵이나 과자, 인삼이나 귀한 버섯 등의 먹을거리는 물론 빳빳한 신권의 보시금까지 다양한 공양을 받을 때에는 내 수행에 비춰 부끄러울 때가 많다. 굳이 공양게송 오관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출가했다는 사실만으로 받기에는 너무도 과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당연하게 받았던 공양에 대한 생각이 세월이 흐를수록 철이 드는 것인지 무심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다행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평소에 들어오는 소소한 공양은 무엇이든 꼭 하나는 먹는다. 마치 헌식하듯 배가 불러도 한 조각은 먹고 후원이나 울력의 간식으로 내려 보낸다. 옷이나 목도리 등은 하루나 이틀을 가지고 있다가 다시 인연을 따라 나누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라도 해야 정성껏 올리는 신도의 마음에 부응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한편 설 추석 등의 명절에는 받은 것 중에서 분에 넘치는 것은 따로 챙겨서 어른 스님께 드리는 것이 익숙해져 있다. 이유는 내가 쓰기에 너무 과한 것은 오히려 내 복을 감한다는 생각에 그대로 큰스님께 올리는 것이 신도에게도 더 큰 복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을 담은 공양이 아니라 신도들의 정성으로 내 인사치레를 다하는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감출 수 없는 현실이다.

시주의 은혜를 돌아보다

출가의 복은 어디까지인가. 출가 자체가 공양을 받을 만한 고귀한 일이기는 하나 그것은 신도의 입장이다. 그러므로 신도는 마냥 신심을 내어 출가 수행자에게 보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받을만하다는 생각에서 깨어나 내 덕행을 살피고 공덕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수행하는 것이 참다운 본분인 것이다.

어김없이 설날이 다가온다. 순박한 신도들은 정성껏 스님들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공양을 준비할 것이다. 새삼 시주의 은혜에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 복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



[불교신문 2593호/ 1월27일자]

2010-01-23 오전 10:05:49 / 송고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