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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스님 / ‘세상을 품어라’...묘청스님(경주선학과2002년) 0
 작성자: 석림동문회  2010-01-26 10:28
조회 : 10,906  
 
묘청스님 / 논설위원ㆍ조계종 문화국장
 
 
Embrace the world. 세상을 품어라. 지금이 전부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편견의 가치로 저울질하지 마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줄 것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존재는 이유와 함께 있다.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존재는 본능적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그리고 존재할 이유를 찾은 곳에 머문다. 호떡장사가 될 만한 곳에 호떡장사가, 김밥장사가 될 만한 곳에 김밥장사가, 대형마트가 될 만한 곳에 대형마트가 들어선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다 속에, 사막에, 산꼭대기에는 각각 거기에 살 수 있을 만한 것들만 산다. 살 수 있도록 적응한 것들이 산다. 주고서 돈 될 만한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그 자리에 천막이라도 친다. 거래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
 
거래할 것, 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존재의 이유이다. 살고 싶으면 줄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중생들은 본능적으로 줄 것을 치열하게 찾는다. 이쯤 되면 보시는 그저 편안하게 배 두드리며 할 차원이 아닌 것이다. 내가 가진 돈이든, 명예든, 멀쩡한 다리든, 자잘한 손재주와 말재주든 어떤 것을 동원해서라도 주어야 살 수 있다. 단 내준 것들이 수익이 되어 내게 다시 돌아오면 다시 내주고, 이렇게 섭리는 공짜 없이 순환한다.
 
이 순환하는 섭리에서 눈물과 웃음이 나오고, 원망과 희망이 나오며, 삶과 죽음이 갈라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 따른 이웃들을, 즉 존재가치들을 어떤 소견으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저울질이 어리석은 일이란 걸 알았다면 멈춰야 한다. 존재하는 것들에 평점을 매기고 순위를 매기는 것보다 그 존재에 대한 가치를 찾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누에가 집을 짓는 이유는 그 곳에서 평생 동안 살기 위함이 아니다. 성충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일 뿐이다. 다 여물었다면 속히 집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것이 해탈이다.
 
존재는 모두가 절대적이며 동등하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를 수 없으며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릴 수 없다.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의 다리는 짧아서 세상에 순조롭게 적응한 것이고 자신의 기능을 오롯이 하고 있는 것이다. 석두희천 선사의 말대로 밝음과 어둠이 상대됨은 마치 앞뒤의 발걸음과 같다. 만물은 제각기 공능(功能)을 갖고 있다. 이렇듯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도(中道)다.
 
과거는 지나갔고, 현재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미래는 알 수 없으니, 오직 지금 이 순간이 전부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기대할 수 없으니, 주어진 현재에 목숨을 건다. 목숨을 걸고 오르는 언덕은 얼마나 가파른가. 그렇게 뼈아픈 경험들로부터 배우고 성장한다.
 
마주보고 거울처럼 비추며
 
역경과 고난은 삶을 성숙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반복을 한번이라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온갖 적절한 방법을 강구해서 조금이라도 더 지혜롭게 살도록 스스로를 깨우쳐야 한다. 이러한 섭리의 순환에 어떻게 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존재들끼리 서로 마주보고 거울처럼 비추며 이 끝도 없는 순환에 지치지 말자. 깨달은 자, 오직 실상을 깨닫고 지혜를 전하는 자만이 거대한 순환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다.
 
 
[불교신문 2592호/ 1월23일자]
2010-01-20 오전 10:50:02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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