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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와 교육’ 원력 펴는 은해사 주지 돈관스님 (22기) 0
 작성자: 석림동문회  2010-01-18 13:51
조회 : 11,186  


제10교구본사 은해사는…

조선시대 4대 부찰 중 하나, 대대로 선지식 수도처 명성


신라 진표율사는 ‘관견(觀見)’이라는 시에서 은해사를 ‘한 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다’고 표현했던가. 불.보살.나한 등 팔공산 곳곳에 있는 불보살들이 마치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찬란하고 웅장한 모습이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은해사(銀海寺).

일타스님 조실 지내며 신행 · 수행 면모 일신

성보박물관 개관…2달 만에 ‘참관객 1만명’


은해사는 영남지방의 대표적 사찰로 경산시, 영천시, 군위군, 청송군 등 4개의 행정구역에 걸쳐 있으며 40여개의 전통사찰을 말사로 두고 산내암자만 8개가 있다. 신라 헌덕왕 1년(809) 혜철국사가 창건한 해안사가 전신이다. 1943년까지만 하더라도 은해사에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현재 은해사 본사 내에는 19개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4대 부찰 중의 하나였다는 명성에 걸맞게 대웅전을 중심으로 많은 전각들이 좌우에 포진하고 있다.

<사진> 1940년 대구 능인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오산불교학교 개교 당시 모습.

은해사는 조선시대 홍진국사가 주석한 후에는 선조양종의 총본산이 되었으며, 영파 성규대사가 주석한 뒤로는 화엄교학의 본산으로 이름을 빛냈다. 또 대대로 선지식인들의 수도처가 되어 왔다. 원효스님, 의상대사, 보조국사, 지눌스님, 일연스님을 비롯 향곡.운봉.성철.일타스님 등 수많은 선지식을 배출했다.

특히 일타스님(1929~1999)은 1994년 은해사 주지와 1996년 조실을 지내면서 신행과 수행의 면모를 일신케 했다. 이에 동곡당 일타문도회는 지난해 10주기 추모다례재를 봉행하기도 했으며, 은해사는 일타스님의 수행과 정진, 청정계율사상의 향훈을 그려 부도탑을 조성하고 있다.

산내암자 가운데 백련암은 현재 대구 능인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오산불교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1938년 백련암에 오산학림이 설치되고, 1939년 오산불교학교가 설립인가를 받아 1940년 오산불교학교가 개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능인학교 최초 터전인 은해사 백련암에서 설립기념비 제막식이 봉행되기도 했다.

은해사 내에는 보물 제1270호 은해사 괘불탱화, 대웅전 아미타 삼존불, 후불탱화, 괘불, 신장탱화, 쇠북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은해사 본.말사에 즐비한 성보문화재는 지난해 5월 개관한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보존.관리.전시되고 있다. 개관 두 달 만에 참관객이 1만명을 넘기도 했다.



“절집 문턱 낮추고 대중과 호흡해야”

“사찰도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찰이라고 해서 변화와 혁신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사찰로 들어오는 대문을 세상과 사찰 안의 세상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문’으로 부르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분리되어 있지요. 지역사회와 더불어 생활불교, 대중불교를 실천하는데 매진해야 한다는 것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같은 신념입니다.”

절 입구부터 변화 느껴져

지난 2008년 12월 주지로 취임한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주지 돈관스님. 취임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은해사는 그간 많은 변화를 거쳤다. “생활불교와 대중불교, 사회불교를 실현하기 위한 주 테마는 ‘포교와 교육’”이라는 주지스님의 원력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다. 그 변화의 바람은 사찰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은해사는 법당 안을 제외하곤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같은 독경 대신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도량을 휘감는다. 대웅전 옆 다방(茶房)에선 스님과 신도, 방문객이 자유롭게 어울린다. 은해사는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의 여느 절집과는 사뭇 다르다. 

 

“요즘 같은 겨울철엔

 아이들을 위해 얼음썰매장을 개장하는데,

템플스테이 왔던 아이들이

절을 떠날 줄을 모릅니다.

딱딱한 불교가 아닌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불교로

인식되게 하기 위해서지요.”
 

<사진> “서기 809년 기축년에 창건한 은해사에서 지난해 기축년에 주지직을 수행해 더욱 의미가 있었다”는 돈관스님은 “앞으로도 내실있게 포교와 교육사업을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주지로 임명된 후 가장 먼저 종무소의 문턱을 낮췄습니다. 신도가 스님과 상담을 하고 싶어도 문턱이 높아 망설이기 때문이지요. 취임 후 49곳의 말사 순례를 다녀왔는데 소규모 말사의 경우 산 속에 묻혀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립에서 세상 밖으로,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주지스님을 비롯한 은해사 스님이 직접 사찰 및 문화유산 해설사로 나서 방문객을 맞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연장선상이다.

은해사의 이런 변혁은 이미 산중총회에서 돈관스님이 주지로 추대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세수 48세로 전국 최연소 조계종 본사 주지에 취임한 돈관스님은 “변화를 모색하던 시점이다 보니 당시 젊은 주지에게 거는 주위의 기대에 어깨가 무거웠다”고 밝혔지만, 중앙종회의원, 대구불교방송 총괄국장, 경북불교대학장 등을 두루 거치면서 쌓아온 경력에 힘입어 종무행정을 거침없이 펼쳐나갔다.

스님은 또 취임 후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종무원 법회를 한 달에 한 번 열고 있다. 매주 소임자 스님 회의를 간담회 형식으로 열어 각종 사업과 제반업무를 점검하고, 수림장과 복지관, 종무소, 매표소, 법당 관리인 등 사찰과 관련된 전 직원과의 종무회의를 매주 연다. 종무회의는 기존 딱딱한 분위기가 아닌 특강과 친절교육을 비롯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열린 시간으로 진행된다.

스님은 지역사회에서 생활불교, 대중불교를 실천하기 위해 영천 등 지역 군부대, 교도소 포교, 장학사업, 복지관 운영, 다문화가정 템플스테이 등을 진행해 왔다. 은해사 내에는 지역 교사불자회가 꾸려져 있어 매달 정기법회를 본다. “요즘 같은 겨울철엔 아이들을 위해 얼음썰매장을 개장하는데, 템플스테이 왔던 아이들이 절을 떠날 줄을 모릅니다. 딱딱한 불교가 아닌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불교로 인식되게 하기 위해서지요.”

<사진> 군포교에 매진하고 있는 돈관스님이 지난해 3사관학교에서 봉행한 법회 모습. 

또 종교와 종파를 초월한 교류활동을 펼쳐왔다. 2008년 말에는 성탄절과 부활절에 지역 경산성당을 방문, 지역사회를 아름답게 가꾸는데 함께 노력하자며 먼저 손을 내밀었고, 지난해 부처님오신날 경산성당 정홍진 신부가 답방형식으로 방문하는 등 우의를 다졌다. 또 봉축대법회를 많은 시민과 함께 하기 위해 종파를 떠나 사암연합회를 결성해 행사를 원만히 치러냈다.

학교건립 통해 ‘인재불사’

지난해 10월 개산대재 1200주년을 맞아 열린 산사음악회는 대중과의 소통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장윤정 박현빈 등 인기가수의 출연 외에도 300년의 세월을 지킨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서 펼쳐진 산사음악회를 보기 위해 산문 밖에서 경내로 이어지는 길은 버스와 승용차들로 꽉 메워졌다. 2만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했다. “은해사 창건 이래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처음이었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전언이다.

앞으로 유치원, 초.중.고등학교를 건립해 인재불사에 매진하고 싶은 것이 스님의 오랜 숙원이다. “지금도 시골에 젊은 층이 없는데, 10년 후 미래를 생각하면 불교의 미래가 참 암담합니다. 지역본사를 중심으로 능인학원 등을 설립해 지역 불교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듯이 앞으로 차분히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과업입니다.”

<금강경>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의 가르침에 따르면 ‘부처님을 향한 지극한 마음으로 행하는 작은 일들 하나 하나가 모여 이 시대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는 선근공덕이 된다’고 했다. 지역과 신도들에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도량으로 차분히 한 걸음씩 변화해 가는 은해사의 앞으로 행보가 주목된다.

은해사=임나정 기자 muse724@ibulgyo.com


[불교신문 2591호/ 1월20일자]

2010-01-16 오후 12:07:37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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