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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으로 정혜결사 계승…방일하지 않음이 수행”...법산스님(4기) 0
 작성자: 석림동문회  2026-01-26 13:15
조회 : 2,523  

‘금강경’ 8만 독 조계종 법계위원장 법산 스님

수행풍토 회복 원력으로 2001년 시작한 독송
부다가야서 회향…쉬라바스티서 9만 독 입재

법산 스님은 “10만 독 후에도 계속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법산 스님은 “10만 독 후에도 계속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소감이 있다면 이미 그건 수행이 아닙니다. 발원했기에 게으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조계종 법계위원장 법산 스님이 ‘금강경’ 8만 독 회향을 앞두고 있다. 수십 년에 걸친 독송의 소감을 묻는 말에 스님은 담담히 선을 그었다. ‘금강경’ 10만 독을 성과로 삼기보다, 생활 그 자체의 수행으로 삼아온 태도가 이 한마디에 담겼다.

‘금강경’ 10만 독 발원은 2001년 11월부터 시작됐다.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과 동국대 이사장 소임을 맡았을 때도 바쁜 일정 속에서 하루 10독 이상을 이어왔다. 스님은 지금도 방 안에 향 하나를 피우고 부처님 앞에 앉아 경을 읽는다. “일정이 있어도 무조건 합니다. 멀리 여행을 가도 하루 열 번 독송은 나와의 약속입니다.”

법산 스님이 ‘금강경’ 독송을 발원한 데에는 수행사적 맥락이 있었다. “‘금강경’은 종단의 소의경전입니다. 육조 혜능 스님이 ‘금강경’ 구절을 듣고 깨달았고, 보조지눌 스님 또한 ‘육조단경’을 인연으로 초견성을 이뤘지요.” 스님은 보조 스님의 수행 여정을 차분히 짚었다. ‘화엄경’을 통해 재견성하고,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대혜종고 스님의 어록을 인연 삼아 확철대오에 이른 뒤, 조계산 송광사에서 ‘정혜결사문’을 발표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그 여정 속에는 당시 불교가 마주한 시대적 문제의식도 담겨 있다. “고려 왕실이 큰스님의 자문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불교가 정치와 깊이 얽혀 있던 현실을 통탄한 것이 ‘정혜결사문’이지요.” 참선과 간경 그리고 울력을 통해 자력 수행으로 돌아가자는 선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법산 스님은 “그 정신을 잇는 길이 ‘금강경’ 독송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8만 독 회향은 인도 순례와도 깊이 연결돼 있다. 스님은 앞서 7만 독 회향식을 부처님 성도지인 부다가야에서 봉행했고, ‘금강경’ 설법지인 쉬라바스티에서 8만 독 입재식을 했던 인연을 떠올렸다. “당시 시각장애인 분들과 함께 순례를 떠났는데, 모두가 환희심을 냈습니다.” 그 인연을 잇기 위해 스님은 1월 25일 다시 인도로 향했다. 이번에도 시각·청각장애인 불자들과 함께 부다가야에서 8만 독을 회향하고, 쉬라바스티에서 9만 독 정진 입재식을 봉행한다.

정진의 행원을 묻자 스님은 다시 혜능 스님의 인연담을 들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처럼, ‘금강경’을 독송하다가 어느 순간 한 생각이 확 쉬어 깨달을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할 일을 다 마쳤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깨달음의 한순간보다, 그 자리를 향해 간절함을 놓지 않고 이어온 시간이다. “마음을 비우며 살다 보니 매사가 편안해졌습니다. 종단의 중책이 주어져도 연연하지 않고, 그저 일상처럼 받아들이며 살고 있습니다.”

법산 스님은 가장 아끼는 ‘금강경’ 구절로 32분의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을 꼽았다. “상을 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으로 독송을 이어갈 겁니다. 10만 독을 회향하더라도, 죽는 날까지 정진은 계속될 겁니다.”


( 법보신문 2026.0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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