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님, 이 고추장에 맛을 더하려면 설탕 대신 사과 같은 과일을 넣는 것이 좋다고 하셨는데, 영국은 신맛이 나는 사과가 있고 단맛이 나는 사과가 있어서 어떤 걸 넣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와우, 팔 힘이 많이 들어가네요. 휘핑기로 저어도 알갱이가 계속 걸리는 것 같은데 혹시 여기서 더 저어야 할까요?” “지금 짜지 않고 간이 딱 적당한데 소금을 더 넣어야 하는 이유는요?”
9월17일 서울 성북동 오르막에 소담히 자리한 수월암이 모처럼 북적였다. 세계적 요리 명문 ‘르 꼬르동 블루 런던(Le Cordon Bleu London)’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 콜린과 우수학생으로 선정된 섀넌 막달레나 에르바커 셰프, 주영한국문화원 정윤서 실무관이 팸투어 마지막 일정으로 수월암을 찾은 것. ‘한국의 발효 음식’을 주제로 지난 5일 간 송광사, 백양사 천진암, 영선사 등을 찾아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직접 담가보고 한국의 사찰음식 명장, 장인 스님들로부터 그 안에 새겨진 불교 철학을 공부해온 만큼, 셰프들은 눈앞에 놓인 메주가루와 고춧가루부터 익숙한 듯 살폈다.
사찰음식 장인이자 수월암 주지인 혜범스님이 마지막 주제로 선정한 특별 메뉴는 ‘고구마 고추장’. 혜범스님이 다시마 끓인 물에 고구마를 으깨어 소금과 뒤섞기 시작하자, 완전 채식주의자인 콜린과 섀넌이 순수 채식 재료에 높은 집중을 나타냈다. “스님 고구마는 얼마나 들어가나요?” “어느 정도 형체가 있게 하나요? 아니면 완전히 없애야 하나요?” “처음부터 소금을 정량 다 넣으면 되는데 왜 남기는 거죠?” 펜을 들고 고추장 레시피가 적힌 종이 뒷면에 답을 써 내려가는 얼굴에 한껏 진지함이 묻어났다.





세계 최고의 요리 학교라 불리는 ‘르 꼬르동 블루’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온 콜린 교수도 이날만큼은 열혈 학생이 됐다. 런던 캠퍼스에서 채식 기반 요리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한국과 영국의 재료가 다른 만큼, 한국 식재료를 대신할만한 영국 식재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지난 5일 간 배운 사찰음식에 대한 지식을 복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에 법송스님(사찰음식 장인)이 단 하나도 버리지 말라고 했다”며 고무 주걱으로 고추장 양념을 박박 긁어내던 콜린 교수는 “여기에 딱 밥과 후라이만 있으면 바로 비빔밥이다”고 제법 농담도 했다. 발효 음식이 갖는 특징에 대해서도 “예전에 냉장고에 보관해둔 고추장을 아내가 선반으로 옮겨 둔 적이 있었다”며 “나중에 선반을 열었을 때 고추장이 펑~하고 폭발하고 있었다”고 농담도 건넸다.
학교에서 우수 학생으로 뽑혀 한국에 오게 됐다는 섀넌 셰프도 ‘비빔밥’ ‘떡볶이’ 등 한국 요리를 자연스레 읊긴 마찬가지. 직접 만든 고구마 고추장을 런던에 가져가 한국 음식을 해 먹을 것이라는 샤론 셰프의 말에 혜범스님이 “그냥 찍어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고 하자 샤론 셰프는 “후무스(병아리콩으로 만든 디핑 소스)처럼요? 그것도 멋지겠다”고 연신 탄성을 자아냈다.
먼 곳에서 온 귀한 걸음에 혜범스님은 사찰음식 뿐 아니라 다도 체험, 성북동 산책, 추석 맞이 송편 등을 한껏 준비했다. “냄새를 맡아봐라” “살짝 찍어 맛을 봐도 좋다” “런던으로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라” 등 살갑게 권하던 스님은 “귀한 시간을 내 방문한 만큼 한국의 불교 문화에 대해서도 하나라도 더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르 꼬르동 블루’와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의 교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한 셰프들은 연신 ‘어메이징’을 외쳤다. 영국에서는 그저 버리는 재료에 불과한 호박잎으로 한국 스님은 전을 부치고 국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 심지어 맛있다는 것, 며칠 전 먹은 인삼 튀김이 아직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 등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내던 콜린 교수는 “재료를 낭비하지 않고 온 우주, 전체를 생각하며 만드는 문화가 새삼 놀라웠다”며 “각각의 스님마다 음식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 불교 철학을 재미있게 풀어줘 다양하고도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섀넌 셰프 또한 “셰프로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식재료를 대해야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정하게 되는 아주 귀한 시간들이었다”고 했다.
세계 최고 요리 학교로 꼽히는 ‘르 꼬르동 블루’ 셰프들의 방문은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과의 협약에 따른 것이다. 특히 런던 캠퍼스의 경우, 한국의 사찰음식 강의를 채식 조리 전문 과정에 정규 강의로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