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양 낙산사(주지 일념스님)가 미끄러운 빙판 위에서 ‘멈춤’과 ‘집중’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특별한 템플스테이를 마련했다. 서핑, 스키 등 시즌별 이색 프로그램을 열어 MZ세대를 중심으로 ‘힙(Hip)’한 템플스테이 열풍을 일으킨 낙산사가 이번엔 컬링을 준비했다. 12월 26일부터 28일까지 2박3일간 진행된 ‘컬링 템플스테이’는 단순한 스포츠 체험을 넘어, 빙판 위에서 삶의 균형을 찾는 수행의 장이었다.
■“미끄러운 발바닥 감각,
알아차리는 게 곧 수행”
일상의 번뇌, 스톤에 실어보내다




템플스테이 이틀째인 12월27일 오전, 40여 명의 참가자들은 낙산사를 떠나 강릉아이스링크 컬링장으로 향했다. 동계스포츠의 메카인 이곳에는 특별한 인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은메달의 주인공 ‘팀킴(Team Kim)’의 김은정, 김영미 선수, 그리고 임명섭 강릉시청 컬링팀 감독이 직접 지도자로 나선 것이다.
“왼발에 슬라이더를 끼우시고요, 빙판 위에는 오른발부터 딛으셔야 되요” 얼음 위 조심스러운 첫발이 떼어지자마자 여기저기서 “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익숙지 않은 빙판 위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허벅지에는 팽팽하게 힘이 들어갔다. 신발만 신었을 때와 슬라이더를 꼈을 때의 감각 차이도 극명했다.
스톤 또한 마음처럼 직진하지 않았다. 미세하게 휘어지는 스톤의 궤적은 마치 통제되지 않는 우리 마음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세심한 지도와 한 시간여의 맹연습으로 어느 정도 태가 나기 시작했다. 스윙킥과 브룸질(쓸기), 스톤 던지기 등을 배우는 참가자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훈련을 마친 뒤에는 팀을 나눠 미니 게임이 진행됐다. 시종일관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빙판 위의 체스’라 불리는 컬링 특유의 전략적 판단이 요구될 땐 고요함도 감돌기도 했다.






낙산사 템플스테이 연수원장 선일스님은 “이번 컬링 템플스테이 또한 마음공부의 일환”이라며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스님은 여름철 서핑, 겨울철 스키와 컬링까지 혁신과 변화의 전법 원력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현대 언어로 바꿔 전달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2만 명 이상의 참가자가 낙산사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는 등 힙한 템플스테이 인기를 이끌고 있는 장본인이다.
선일스님은 “컬링은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스톤을 과녁 중심에 정확히 보내기 위해 극도의 몰입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불교적인 수행, 명상과도 맞닿아 있다”며 “빙판 위 발바닥이 미끄러지는 느낌과 감각을 살피는 과정 또한 명상과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일스님은 “처음 배우는 시간이기에 알아차림을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컬링을 배우는 이 시간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과 연결돼 있음을 인지하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소리와 진동으로
마음의 평안을 느끼다



쌀쌀한 날씨에도 컬링을 통해 땀 흘리며 ‘동(動)’적인 수행을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낙산사로 돌아와 소리 명상으로 ‘정(靜)적’인 수행에 돌입했다. 소리명상 지도를 맡은 선일스님은 크리스탈 싱잉볼 등을 이용해 맑은 울림을 전했다. 앞서 자율적으로 휴대폰을 반납한 참가자들은 편안한 자세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진정한 디지털 디톡스를 맛보기도 했다. 선일스님은 무엇보다 ‘멈춤’을 강조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도 5분, 10분 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안함을 얻길 기원했다.



저녁 예불 시간에는 낙산사 연수과장 법명스님의 알기 쉬운 해설이 곁들여졌다. 칠정례와 반야심경 독송의 의미를 배우며 참가자들은 불교 예절을 익혔다. 이어지는 ‘요가형 108배’는 낙산사 템플스테이의 백미였다. 절 동작 사이에 팔과 허리를 쭉 펴는 요가 자세를 결합해, 육체적 시원함과 함께 108번의 번뇌를 하나씩 내려놓는 시간을 가졌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아…
지금 이 순간이 여러분의 전부”
2박3일의 일정은 12월28일 선일스님의 ‘즉문즉설’로 정점을 찍었다. 미리 참가자들이 작성한 질문지를 중심으로 스님이 답하는 방식이었다. “스님이 왜 되셨나요?” “지장전에 사는 고양이 이름은 뭔가요” 등 가벼운 질문부터 일상의 고민과 관계의 피로를 토로하는 진중한 질의도 있었다.
선일스님은 이들에게 따금하지만, 시원한 연비를 놓았다. 그러면서 스님은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때문에 여러분이 머무는 이 자리 이 순간이 여러분의 전부”라며 “이제 새해가 시작되고, 또 사람들과 관계 속 부딪히며 살아가야 할 텐데, 그곳이 곧 수행처라 생각하고 평안함을 갖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어 선일스님은 “감각적 쾌락의 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에도 또 즐거움에도 끄달리지 않는 ‘완전한 행복’은 마음속 고요와 평온함을 통해 얻을 수 있다”며 “조금 지쳤을 때, 다시 낙산사에 와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 마음 하나 들고, 놓을 힘 생겼을까?
“그 옛날 천하장수가/천하를 다 들었다 다 놓아도//한 티끌 겨자씨보다/어쩌면 더 작을//그 마음 하나는 끝내/들지도 놓지도 못했다더라.” (설악당 무산대종사 ‘마음 하나’)
올 한해 정말 힘들고 바쁜 시간을 보냈다는 참가자 백승우(31·남, 전남 나주) 씨는 연말을 잘 마무리하자는 마음으로 연인 및 친구들과 낙산사를 찾았다고 한다. 템플스테이를 처음 체험했다는 승우 씨는 “평소 접하기 어려운 컬링도 배울 수 있고, 다른 종교와 달리 강요하지 않고 힙한 불교의 매력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승우 씨는 “모든 것은 내 안에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선일스님의 말씀에 울림을 느꼈다”며 “여기서 느끼고 배운 것을 잘 새기고 늘 내 마음가짐을 평안하게 가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제 낙산사를 떠나는 이들에게, 티끌보다 더 작을 '그 마음 하나' 놓을 힘이 생겼길 바라본다.
( 불교신문 2025.12.28 )











